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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국가의 역할은 군인의 죽음에 대한 '무한 책임'
- 제70회 현충일 기념 성명 -
오늘은 제70회 현충일입니다. 나라와 시민을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을 추모합니다.
지난 6월 4일,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항소심의 변론이 종결되었습니다. 고 홍정기 일병은 2016년 훈련 기간 군의 부실하고 안이한 의료 조치로 1달여에 걸친 반복적 증상 발현, 호소에도 불구하고 백혈병 발병 사실을 진단 받지 못한 채 급성뇌출혈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군은 「헌법」, 「국가배상법」 상의 오래된 악법인 이중배상금지(군인과 경찰은 국가의 과실로 사망하였더라도 보상과 배상 중 택일해야 함) 조항을 이유로 유가족에게 배상을 거부했고, 1심 재판부 역시 군의 손을 들어 유가족이 패소했습니다.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을 비롯한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 이 황당한 악법을 폐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러던 차,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이 1심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 문제를 군인권센터와 함께 공론화하였고 2024년 12월 (당시 기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수석최고위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각 당 지도부를 면담하여 결국 2025년 1월, 국회에서 「국가배상법」 상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폐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책임을 인정받지 못했던 분노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일, 법 개정 이후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홍 일병 어머니 박미숙 님은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아들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국방부장관, 그리고 국군통수권자가 아들의 영전 앞에 사과하기 바란다”며, “금액으로 배상해줄 생각이라면 국가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배상액을 정해주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해야 권력에 줄서기 바쁜 군 수뇌부의 무관심 속에 일 년에 100명 가까운 군인들이 전투와 무관하게 사망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말과, 한 군인의 사망에 국가 재정이 흔들릴 정도가 되어야 국방부가 군인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지휘관도 큰 책임을 느낄 것이라는 호소도 남겼습니다. 힘없고 빽없는 부모라 자식이 군대 가서 사망하고도 명예회복 하나 못한다는 자괴감이 안 들도록, 나중에 하늘에 가서 아들을 다시 만났을 때 떳떳한 엄마일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는 판단을 내려달라는 호소도 남겼습니다.
홍 일병 유가족은 국가배상 외에도 국가유공자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훈부와 법원은 군의 과오로 인한 질병 악화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애써 부정하고, 군 복무와 백혈병 발병의 인과 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며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홍 일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 하는 일을 반대해왔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사망한 군인들의 죽음에 보훈 등급을 매기고, 나아가 국방부 역시 순직 유형 분류로 등급을 매기는 기막힌 현실 역시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6월 5일, 마침내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채 상병 순직의 진정한 진상 규명에 착수하기까지 사망으로부터 장장 2년이 걸렸습니다. 이렇듯 군 복무 중 사망하면 진상규명, 국가의 사과와 배상, 보훈에 이르기까지 첩첩산중의 끝없는 소송을 거쳐야 비로소 고인을 현충원에 안장하고 국가의 예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임기를 시작할 때 현충원을 참배합니다. 오늘은 현충일 기념식도 열립니다. 새 정부에서 군 복무 중 사망에 대한 국가의 무한한 책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차별 없는 보훈 제도 개혁을 약속함으로써 군 사망 사건 유가족들의 오랜 눈물을 닦아주길 바랍니다.
2025. 6. 6.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