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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홍정기 일병 어머니, 이재명, 한동훈, 조국 당대표 면담 요청

작성일: 2024-09-10조회: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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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홍정기 일병 어머니, 이재명, 한동훈, 조국 당대표 면담 요청

- 국가배상법 이중배상 금지 개정 및 국가유공자 소송 관련 면담 요청 -

안녕하세요, 고 홍정기 일병의 엄마 박미숙입니다.

제 아들 고 홍정기 일병은 2016년 육군 2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3월 초, 몸에 이유 없이 멍이 들고, 심한 어지럼증과 매스꺼움 등의 증상이 생겨 군의관을 수차례 찿아가 진료를 보았지만, 군의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진통제나 감기약을 처방만 했을 뿐입니다. 계속되는 증상에도 제대로된 진료도 못받고, 연대 전술 훈련으로 진료시일도 늦춰졌습니다. 뒤늦게 민간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혈액암 가능성을 제기하며 즉시 큰 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를 받아보라 했지만 인솔 간부는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정기를 큰 병원이 아닌 부대로 데리고 들어와 방치했습니다. 며칠 뒤에 있을 군병원 외진에 갈 수 있도록 외진버스를 예약해줬을 뿐입니다. 결국 저희 아들은 국군춘천병원으로 가는 외진버스에서 의식을 잃었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아들의 사인은 아급성 뇌출혈이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걸 모르고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합병증으로 뇌출혈이 왔던 것입니다. 요즘은 급성백혈병도 빨리 치료하면 합병증으로 이어지지 않고 완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병원만 제때 데려갔더라면, 그래서 치료라도 한 번 제대로 해봤더라면 어땠을까요.지금도 그때 아들이 고통속에 있었을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앞서 드린 이야기는 제가 수도 없이 여러번 언론인 여러분 앞에서 드렸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말 할 때마다 8년 전 일이 오늘 같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한 번 더 이 이야기를 드리는 건, 여전히 나라 지키러 갔다가 희생된 아들이 합당한 대우와 명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정기 뿐 아니라 이 땅의 여러 군 사망 사건 유가족들이 함께 겪고 있는 아픔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님,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님에게 면담을 요청합니다.

우리 가족은 지금 국가를 상대로 두 개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배상 소송이고, 하나는 국가유공자 소송입니다. 정기의 죽음이 명백한 국가의 과실에 의한 것이니 배상하고 사죄하라는 당연한 요구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가 군의관의 무관심, 훈련, 지휘관의 무책임으로 사망했으니 법률 상 ‘국민의 생명ㆍ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인 ‘순직군경’으로 인정하여 국가유공자로 예우해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둘 다 해줄 수 없다고 하여 기약 없는 재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법도 군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국가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만들어진 ‘이중배상 금지’란 괴상한 헌법 조항 때문에 군인, 경찰은 국가의 과실로 인해 사망해도 보상금을 받으면 국가로부터 배상은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군 사망사건 유가족들이 보상과 배상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황당한 선택지를 부여받아 왔습니다.

공무와 관련해 사망한 군인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은 법이 정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상을 받았다고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겪은 손해를 물어주는 배상 책임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 이 황당한 법의 문제를 지적해 온 지가 꽤 오래 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 해 10월에도 각 당 대표들과 법무부장관에게 법률 개정을 논의하고 싶다며 면담요청서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대표님이 면담요청에 응했고, 12월 15일에 만났습니다. 그에 앞선 6월, 한 대표님은 저희 아들 이름을 부르며 국가배상법의 문제를 역설한 적도 있었고, 면담요청에 즈음하여 법무부가 ‘유가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이중배상에서 적용 제외하는’ 국가배상법 개정안도 발의했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면담 자리에서 장관님이 저희 아들과 눈이 닮았다고 하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이런 법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개정 법률안은 국회 법사위 회의에 제대로 상정조차 되보지 못한 채 반년 이상을 잠들어있다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그대로 폐기되었습니다. 발의를 주도했던 한 장관님이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고, 야당 의원님들도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는 법안이라 생각했는데 모두의 무관심 속에 그냥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22대 국회에 이르러 지난 6월,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님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주신 상태입니다만 또 기약 없이 국회에 잠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던 사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유공자 소송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 3월 22일, 법원이 조정 권고를 했습니다. 보훈부에 정기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제게는 소를 취하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권고를 받은 보훈부는 다시 보훈심사위원회를 개최해서 아들이 순직군경에 해당하는지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7월 17일, 보훈심사위원회는 권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고, 법무부의 소송지휘에 따라 권고 불수용 의사를 법원에 통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재판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음 기일은 9월 26일입니다.

보훈부는 저희 아들이 백혈병에 걸린 것은 개인 책임이라는 원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정기는 백혈병에 걸려서 죽은 것이 아니고, 백혈병에 걸렸지만 군의 과오로 치료를 받지 못해 합병증 뇌출혈이 와서 사망한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급성백혈병에 걸리면 누구나 한 달도 안되어 뇌출혈로 사망합니까? 제때 치료만 받았더라도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보훈부는 정기를 어차피 죽을 사람 취급하며 국가의 과오를 덮기에만 급급합니다. 제가 이 소송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이런 국가의 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한 장관님을 만났을 때 장관님께 국가유공자 소송에 대해서도 설명드리니 정기가 무리없이 유공자로 인정될 것 같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마저도 산산히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엄마, 아빠가 언제까지 이렇게 자식 영정을 들고 다니며 호소하고, 빌고, 찾아다니며 약속을 얻어내고, 그 실낱같은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합니까?

세 분 당대표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만나주십시오. 

국가배상법과 국가유공자 인정 문제는 정기와 저희 뿐 아니라 사망 군인 유가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겪는 황당한 비애입니다. 수도없이 많은 유가족이 사과 한마디, 합당한 예우를 얻고자 국가를 상대로 송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가 맞습니까? 

21대 국회에서 지켜지지 못한 약속,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각 당 당대표님들께 이제는 그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정부는 올 해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군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킨다고 하던데, 나라 지키다 죽은 아들, 딸들의 영정이 길거리를 헤매는 나라에서 쉬는 날 하루 늘린다고 무슨 군인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사람 죽었을 때만 반짝 관심 가질 것이 아니고, 죽기에 앞서 안전한 군대를 만들어주고, 희생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국가를 만들어주십시오. 

이런 제가 억척스럽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제가 유별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정기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 낳아 국가 수호를 위해 입대 시킨 대한의 엄마들이 아들 잃은 죄인으로 남지 않게 해주십시오. 국가에서 정한 의무를 따르도록 키운 걸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다해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면담에 응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24. 9. 10.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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