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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한겨레] ‘국방의대’가 능사가 아닌 이유 [똑똑! 한국사회]

작성일: 2024-05-21조회: 333

사관학교 시절 친한 동기인 ㄱ은 장기 복무 군의관이다. 그런 ㄱ이 전공과 선택 시기에 별꼴이라며 얘기해준 것이 있다.

국방부의 계획에 따라 장기 군의관으로 양성된 자원들은 소요에 맞춰 선발된 것이기 때문에 전공과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선택지 사이에서도 선호하는 과와 기피하는 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이 이비인후과의 적임자라며 장문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온 이부터 서로 사전에 정하지 않았냐며 피부과는 양보하라고 아웅다웅하는 이들까지. 결국 선호 과를 차지하기 위한 최후의 가위바위보에서 진 이들이 울면서 응급의학과, 신경외과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ㄱ은 비선호 과인 외과에 자원하여 일찌감치 이 아수라장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어차피 무슨 과든 한 20년 의무복무는 해야 하잖아. 근데 막 울고 난리였다니까? 나가서 개업이라도 할 건지 원.” 

군대엔 의료 사각지대가 많다. 무엇보다도 지리적 문제가 크다. 우리나라 군대 대부분은 산골 오지, 의료 취약지역에 위치한다. 요즘은 병사들에게도 예약이 어렵고 대기가 긴 국군병원 대신 민간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진료 외출 제도가 마련돼 있고, 급여 항목에 대해선 진료비를 보전해주는 지원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도 결국 근처에 이용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존재해야 비로소 쓸 만한 제도가 된다. 병사들이 진료 외출을 통해 나올 수 있는 시간도 대체로 늦은 오후 또는 저녁 시간이 될 텐데, 과연 양구나 화천 같은 곳에서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이 과연 몇이나, 또 진료과는 몇개나 될까?

그럼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강제하는 대신 나라가 직접 군의관을 키우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이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을까? 국방부는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군 의료 역량 강화를 위해 장기 군의관 확보, 군병원 특성화 등을 추진해왔다”며 “국방의학대학 설립은 장기 군의관 확보를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또한 직접 언론에 나와 국방의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방부가 직접 의사를 키우겠다는 야심을 가진 건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이미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시도됐으나 의사 단체의 반발로 매번 좌절됐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공공의료 강화의 명분으로 다시 ‘국방의대 카드’가 등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실제로 국방의대를 통해 장기 군의관이 확보되면 의료의 질이 높아질지는 의문이다. 동기 ㄱ이 농담처럼 남긴 사례처럼 나랏돈으로 키워내는 군의관이라 해서 전역 후 개원하기 유리한 과에 몰리지 않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베테랑 군의관 확보는커녕 의무복무가 끝나면 바로 이탈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국방의대의 설립이 공공의료의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실로 위험한 착각이다. 의료 취약지역의 인구 구성과 환경에 맞는 의료 수요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예비할 의료의 성격, 임상 사례는 완전히 다르다. 낙후지역의 의료공백을 막고자 격오지에서 강제로 복무하는 필수과 군의관을 키워서 군병원을 민간에 개방하는 ‘꿩 먹고 알 먹고’ 식으로 접근했다간 국방의료, 공공의료 양쪽 모두에서 전문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인원에 비해 부족하고 낙후된 군 의료시설, 열악한 근무환경에 따른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 부족 문제, 이 때문에 암암리에 벌어지는 무면허 행위 등 군 의료엔 장기 군의관보다 더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실시한 ‘군 의료체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병들이 군 의료서비스와 관련해 가장 불편함을 호소했던 부분은 근무환경에 따라 서비스 접근성이 차이나는 점, 무엇보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없어” 적시에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조직문화에 있었다. 국방의대를 통해 과연 몇명의 군의관이 늘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능사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국방의대’가 능사가 아닌 이유 [똑똑! 한국사회]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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