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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한겨레] 각하를 욕했다며 징계했던, 해병대 김계환의 ‘안일한 불의’

작성일: 2024-02-06조회: 444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육·해·공 3군 사관학교엔 ‘사관생도 생활신조’라는 게 있다. 생도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암기사항이다. 몇년 전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송곳’에서 주인공과 함께 언급된 적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하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하나,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드라마 ‘송곳’에서 주인공인 육사생도 이수인(지현우)과 동기들은 부재자 투표에서 특정 후보를 뽑도록 생도들을 종용한 육사 지휘부에 대항해, 동기회 자리에서 군의 정치개입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로 은밀히 준비한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지휘부가 동기회에 배석해 생도들이 발언하지 못하도록 압박했고 결국 준비한 내용이 발표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가 싶은 순간, 돌연 이수인 생도가 손을 든다. 이수인이 ‘험난한 정의의 길’을 선택한 순간이다. “우리는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도록 교육받았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며 문제를 제기한 결과, 이수인은 퇴교 압박과 집중 징계 같은 집요한 괴롭힘을 당한다.

나의 군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탄핵정국을 지나면서 군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불만을 자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는 이유로 기무사에 군사경찰(헌병)에 자주 소환됐다. 불려간 곳에서 나는 일장 연설을 듣곤 했다. 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로서 민주주의니, 정치적 중립이니 하는 말을 공연히 내뱉는 것은 안일한 불의의 길이라고 했다. 너만 그렇게 똑똑하고 잘났냐는 욕도 들었다. 네가 사관학교를 나온 만큼 ‘정의의 길’을 걷길 바란다는 훈계로 자리가 마무리됐다.

반복된 소환은 ‘상관 모욕’ 징계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를 욕했다는 혐의였다. 징계위원들은 내게 어떻게 감히 ‘각하를 욕할 수 있느냐’면서, 도대체 왜 매번 안일한 불의의 길을 택하느냐고 화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엄밀하게는 대통령을 욕한 것도 아니었지만, 징계위원들은 내가 정말 욕했는지와 같은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말은 불의에 동참함으로써 얻는 편안함을 뿌리치고 험난하더라도 정도의 길을 택하란 얘기일 텐데, 대통령을 욕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편안함 따위는 없었다. 되레 징계위 회부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징계위원들도 나를 두고 어째서 안일함의 유혹에 넘어갔느냐며 탓하기 바빴다. 이 기가 막힌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은 당시 나의 소속 부대 참모장이자 현재 해병대 사령관인 김계환 장군이다.

지난 1일 서울 용산 중앙군사법원에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항명죄로 기소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 재판이 있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계환 사령관은 마무리 발언에서 박 대령이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 가치를 내세웠다”며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영웅심리로 흔들어선 안 된다.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이미 진상이 규명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나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과거 기무와 군사경찰, 징계위에서 숱하게 강조했던 ‘안일한 불의의 길’과 ‘험난한 정의의 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 장군 지적대로 박 대령이 불의의 길을 걸었다면, 그 대신 얻게 된 안일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군인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항명 혐의로 직위해제를 당하고 기소돼 피고인석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들이 계속 강조하는, 그러나 들을수록 실체가 불분명한 ‘험난한 정의의 길’이란 무엇일까. 훗날 모든 사실관계가 낱낱이 드러난 뒤에는 자신들이 “자의적인 법 해석” “편향적 가치” “영웅심리”라고 비난한 ‘안일한 불의’가 사실 정의였노라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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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73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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