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책임’과 ‘무책임’ [똑똑! 한국사회]
중위 때 일이다. 나는 해병대 한 여단의 작전장교로, 막 부임하신 여단장의 전술훈련평가 준비로 연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단장의 지휘능력을 평가하는, 한해 가장 큰 훈련 평가다. 내가 맡은 일은 주어진 훈련 과제에 맞춰 참모 토의를 통해 훈련용 작전계획이 만들어지면, 그 작계에 맞춰서 ‘워게임’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가상의 전장 공간과 배치받은 병력, 사전 필요한 계획 등을 입력시키고, 워게임 전체 데이터와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여단 간부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재밌기도 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나에게 ‘전역해야겠다’는 모종의 결심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됐다. 준비 과정이 고되어서가 아니라, 이 훈련을 통해 확인한 여단장, 크게는 고급장교의 책임감과 그에 대한 의식이 고작 요 정도에 불과하구나, 어떤 바닥을 목격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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