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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이번엔 해군... 군인의 성관계 규제하는 이상한 법

작성일: 2019-03-20조회: 716

이번엔 해군... 군인의 성관계 규제하는 이상한 법 

해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과 군형법 92조의6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너 게이지?"

갑자기 부대로 찾아온 헌병이 던진 한마디에 '예'라고 답한 순간, 범죄 혐의자가 됐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해군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해군에서 색출된 군인은 3명으로 확인됐습니다. 2018년 연말부터 시작된 수사는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행되고, 얼마나 더 많은 군인이 색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자백 강요로 이뤄지는 성소수자 군인 색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 인권단체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성소수자 군인 처벌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18년 말, 성소수자 군인 A는 부대 병영 생활 상담관을 찾아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털어놓으며 성적 지향으로 인해 생긴 고민을 상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는 다른 남성 군인과 성관계를 가졌던 사실을 꺼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상담관이 갑자기 A에게 상담 내용을 상부에 보고해도 되냐고 묻습니다. A는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동성 군인 간에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몰라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상담관은 내담자가 처벌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A에게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은 채, 상부에 상담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이후 A는 범죄 피의자로 전환돼 헌병의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상담하러 갔다가 느닷없이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A를 찾아온 헌병 수사관은 '정말 다른 남성 군인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 맞는지' 확인했고, 그 상대가 B라는 사실을 자백받았습니다. 이후 수사관은 B의 사무실을 찾아가 대뜸 '너 게이지?'라고 질문했습니다. 당황한 B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사관은 그제야 B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미란다 원칙을 알리고 A와의 관계를 자백받았습니다.

수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사관은 B의 핸드폰을 뺏고,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누가 성소수자인지 확인했습니다. 성관계를 했는지 추궁하고 또 추궁했습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수사 대상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만약 A가 수사관에게 B와의 성관계 사실을 부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B가 게이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다면, B가 A와의 성관계 사실을 부인했다면, 범죄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관계 현장을 적발한 것도 아니고, 누가 목격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사관들은 자백만이 유효한 수단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소수자 군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자백을 유도합니다. 미란다 원칙도 알리지 않고 여러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너 성소수자냐?'라고 질문하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고는 좁은 방으로 데려가 나는 수사관인데 모든 걸 다 알고 왔다고 핸드폰부터 내놓아 보라고 하면, 계급 구조가 분명한 군대에서 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사관들은 반인권적인 수사 방법도 동원합니다. 이들은 성소수자인 군인에게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데이팅 앱'을 사용해 보라고 시킨 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합니다. 이는 은연중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네가 성소수자인 것이 밝혀질 수 있다'는 압박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으로 굴욕감을 주기도 합니다. 포지션은 어떤 것인지, 언제부터 동성애자가 되었는지 등을 물어보며 피의자가 정상적인 심리 상태로 수사에 임할 수 없게 합니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는 군의 수사 태도에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며 굴욕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뀐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출석 요구서도 보내지 않고, 자신이 수사관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자백부터 받아낸 뒤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군사법원은 2017년 육군에서 색출한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재판에서, 헌병 수사관들의 수사기록을 모두 불법 수집 증거라 판단하고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수사는 시작에 불과... 망가진 성소수자 군인의 삶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지시 관련해서 기자회견하는 군인권센터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왼)과 김형남 간사(오)가 13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육군 내 동성애자 군인 색출 지시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왼)과 김형남 간사(오)가 2017년 4월 13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육군 내 동성애자 군인 색출 지시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 군인들의 고통은 수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시적인 아우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본인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공포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사 사건이 생기면 결과에 따라 징계, 인사 처분 등이 뒤따르기 때문에 군인들은 부대 인사 계통을 통해 고지를 받습니다. 

해당 문서는 군대 내 인트라넷 망을 통해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이름과 죄명이 담겨있습니다. 사안이 민감하면 익명 처리를 하거나 비밀번호를 걸어두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성소수자 군인들은 상시로 자신의 성적 지향이 부대원들에게 공개될 것을 두려워합니다.사건이 종결돼도 기록이 남으니 아우팅 공포는 그대로입니다. 실제 육군 색출 사건 당시 한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재판 출석 요구서가 익명 처리되지 않고 부대로 하달되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해군 색출 사건에 군인권센터가 우려를 표하자, 해군은 "군인권센터가 성소수자 보호라는 핑계로 수사 관련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개인 신상 보호를 위해 비공개 수사 중인 사항이 노출될 우려를 초래한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피의자가 성소수자라 신경을 썼는데 군인권센터가 사건을 폭로했으니 신상 정보가 노출되더라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협박입니다. 성소수자 군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군대가 이들을 아우팅 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성소수자 군인들은 성폭력 가해자로 오인 당하기도 합니다. 이들을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이 '추행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추행'은, 통상적인 의미의 성추행이 아닌 합의한 남성군인 간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회 통념상 추행을 성추행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 성소수자 군인들이 성폭행 가해자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인사상 불이익도 상당합니다.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이후 갖가지 인사 불이익을 당합니다. 인사 평점이 우수한데도 진급 누락 등의 인사 불이익을 겪고 원치 않는 전역을 한 이들도 있습니다. 아직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를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즉시 파면됩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5명 중 현역 군인은 4명이며 모두 간부입니다. 이들은 2년 가까이 언제 파면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복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직장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심정은 이루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성소수자 군인들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 군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색출 당하지 않았더라도 곳곳에서 복무 중인 수많은 성소수자 군인들 역시 비슷한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사적인 장소에서 합의 하에 동성 상대와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열심히 복무해온 군인들이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가 정상은 아닐 것입니다.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2017년 'A 대위 사건'으로 더 많이 알려진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은, 군대에서 경찰 역할을 하는 헌병 수사관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소수자 군인을 찾아내 수사했던 사건입니다. 당시 육군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동성애자 군인 색출 작업에 나섰습니다. 50여 명의 군인들이 수사 선상에 올랐고 이 중 22명이 입건돼 범죄 피의자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재판까지 이어진 사람은 9명, 이중 4명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전과자가 되었고 4명은 대법원 상고심, 1명은 고등법원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11명은 군 검찰로부터 기소 유예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2명에 대해선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들의 죄명은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입니다.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 무엇을 처벌하려고 만든 법인지 모호한 이 법은 2013년에 한 번 개정된 적이 있습니다. 개정 전의 내용을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계간은 닭이 항문으로 교미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남성 간 성관계를 낮추어 부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계간이라는 표현이 반인권적이라며 '항문성교'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명칭을 바꾸다 보니 처벌 대상이 모호해졌습니다. 내용만 보면 이성인 군인 부부가 항문성교를 해도 처벌할 수 있다는, 국가가 개인의 성관계 체위를 규제하는 이상한 법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항문성교'는 남성군인 간의 항문 성교로, '그 밖의 추행'은 항문성교 외의 방식을 통한 남성군인 간의 성교로 해석했습니다. 개정 전 법률을 준용한 것입니다. 이 법이 동성애 처벌법인 이유는, 법원이 오롯이 '합의로 이뤄진 남성군인 간 성관계'만 처벌하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 군인이 남성 군인을 상대로 강간, 강제추행 등 강제성이 수반된 성폭력을 저지르면 군형법 92조의6이 아닌 다른 죄가 적용됩니다.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를 둘러싼 논란은 오래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등 3차에 걸쳐 이뤄진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전면적인 색출을 통한 처벌이 처음이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위헌 결정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입니다. 법을 악용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현실화하였다는 점에서 추행죄가 갖는 위험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이 1건,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피해자들이 제출한 헌법소원이 12건 계류 중입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차치하더라도 일반 대중의 오해도 상당합니다. 흔히 추행죄를 범했다고 하면 공공장소인 생활관(내무실)에서 남성 군인들끼리 성관계를 하다 잡혀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색출을 통해 수사받은 사건들 모두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진 관계였습니다. 자기 방에서 사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군 기강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추행죄가 폐지되면 상급자에 의한 강제 추행도 막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계급 사회인 군대의 특성상, 하급자가 상급자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고 상급자가 합의로 가진 관계라고 주장하면 하급자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행죄는 쌍방 모두가 징역형을 받습니다. 누가 과연 강제 추행을 당하고도 입을 다문 채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갈까요? 상상하긴 어렵습니다. 더구나 군형법에는 강제추행을 처벌하는 조항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소수자 군인이 아니라 그냥 군인입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 (위국헌신 군인본분)'

2017년 육군에서 색출된 성소수자 군인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올렸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복무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어 적어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헌병 수사관이 '이런 놈들도 이런 말을 쓴다며' 웃었습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이어 국가에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성소수자 군인들이 국가로부터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가치 지향이지, 성적 지향이 아닙니다.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명백한 동성애 처벌법, 추행죄 폐지는 매우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미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의 삶이 추행죄로 인해 무너졌고, 무너지고 있고, 무너질 예정입니다. 이들의 불안한 삶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는 방법은 '추행죄 폐지' 하나뿐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하루라도 빨리 위헌 심판을 개시하고 평의에 돌입해야만 2019년 안에 추행죄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존재가 범죄가 되는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2019년, 반드시 헌법재판소가 차별과 혐오의 양분이 되어 온 악법을 폐지하길 기대합니다. 존재는 심판받을 수 없고, 사랑은 범죄가 아닙니다.

해군 성소수자 군인 법률지원기금 모금 성소수자 군인 색출 피해자를 위한 군인권센터의 법률지원기금 모금

▲ 해군 성소수자 군인 법률지원기금 모금 성소수자 군인 색출 피해자를 위한 군인권센터의 법률지원기금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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